스트레스 참기 놀이

Feel 2007/09/20 00:18
"스트레스 잘 참는 사람?" 하면 "저요" 하고 냉큼 손을 들 만큼, 나름 각 종 스트레스에 대한 tolerance level이 높다고 자부해왔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근래 2~3주 동안은 이런 자부심이 무색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다친 자존심, 마땅치 않은 스스로의 performance, 고갈되어 가는 체력, 흐리멍텅한 미래, 지치지도 않는 주변의 적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칼로 심장을 도려 내듯이 예리한 아픔과 함께 문득 깨달아 버린 '나의 현재의 인생은 20년 전의 내가 꿈꾸던 것에서 너무나 벗어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꿈 꾸던 궤도로의 복귀가 그리 쉽지만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이) 뒤범벅이 되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소멸시켜 버린 것 같다.

본디 사람 쉽게 죽지 않는 법이고, 죽을 마음 먹지 않은 인간인 이상 타고난 체력으로 극복이 안 되는 무엇인가가 있을 때는 이의 극복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 마련. 각 종 다양한 스트레스 참아내기 놀이를 시도해 봤다.

1. TV도 불도 모두 끄고 찬 마루바닥에 대자로 누워 내 사랑하는 Creature speaker에 음악을 '이빠이' 크게 틀어놓고 심호흡 하며 누워있기 (목격자가 있었다면 음악에 치여 사망한 시체 놀이를 하는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2. 최대한 큰 소리의 sound effect가 나는 방법으로 볼펜 집어던지기
3. 나를 제외하고는 지구상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양 입 꾹 다물고 아무 것에도 반응안하기
4. '감히' 말을 거는 같이 사는 남자에게 최대한 험한 표정으로 쏘아보기
5. 치사량의 허브티 마시기
6. 배 부를 때까지 먹기 (에게, 누구나 다하는 거잖아 하시는 분들께 부연 설명 드리자면 고미는 김밥 네줄 정도 먹어도 별로 배부르다고 안 느낍니다)
7. 각 종 드라마에 오버해서 웃고 오버해서 울고 오버해서 감동하기 (옆에서 보면 가히 연극하는 수준이리라)
8. '행복한 폐인의 하루' 를 다시 한번 탐독하기 (다시 봐도 이 책은 정말 너무 웃기다)
9.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나 요즘 스트레스 받아요' 노래 부르기
10. 두들겨 팰 사람이 필요하던 차에 지대 걸려든 '신정아'씨에 과도하게 흥분하기

그럭저럭 안 한 것보다는 효과가 있어 아직까지는 대형 사고는 없이 버티고 있지만 (특히 마루바닥에 누워있기는 기대이상의 효과 발휘!), 아무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옛날에 하던 놀이가 더 약발이 큰 듯하다. 인생이 끝난 양 착각하던 시절에 인생이 안 끝났음을 알려줬던 True Romance나 다시 꺼내 봐야겠다. 내 인생을 버텨내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는 타란티노와 토닛 스캇에게 경의를...

그리고, 다음 주로 다가온 1주일 간의 장기 휴가가 제발 정신적 육체적 윤습함 (혹은 말랑말랑함)을 다시 찾아주기를!
Posted by gomy